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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김승옥 '감수성의 혁명' 그후 50년
작성자 이**** (ip:)
  • 작성일 2021-01-27 20: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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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4·19, 5·16 직후의 한국문학에서 김승옥은 그야말로 반짝이는 별이었다. (중략) 감수성의 일대 혁신이었고 문장의 일대 파격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꾼들도 그 앞에서는 설설 기었고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는 한없이 겸손하매 나에게 그는 하나의 기적처럼 보였다."(김지하 '무진 나그네' 중) 소설가 김승옥(71)이 1960년대 초반 한국 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한 지 올해로 꼭 50년이 되었다. 후배 문인들이 마련한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8일 그의 옛 직장이기도 한 대학로 샘터사 인근에서 작가를 만났다. 2003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은 어눌했지만 표정은 밝았고 건강해보였다. 짧은 음절의 경산출장안마말과 몸짓, 그림이 섞인 필담, 그리고 등단 50주년 기념 도서 제작과 관련해 작가를 만난 소설가 황충상 문학나무 주간의 부연 설명으로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등단 50주년의 소회를 묻자 작가는 "똑같지"라며 담담하게 웃었다. 50주년이 되었다는 것도 지난해 대구출장마사지기념 도서 출간 계획을 전해들으며 처음 알았다고 한다. 50년이라고는 하지만 작품을 발표한 기간보다 침묵한 기간이 더 길었다. 데뷔작 '생명연습'부터 '건(乾)'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장' 등 빛나는 작품을 잇따라 창원출장안마발표했던 그는 1980년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을 연재하던 도중 돌연 반영구학원펜을 꺾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고 군 검열로 원고가 몇 줄씩 잘려나가는 일이 이어지자 집필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소설가들이 절필 선언을 했다가 얼마 안 가 다시 작품을 들고 돌아오는 일이 드물지 않았지만 김승옥은 이듬해 하나님의 흰 손을 보고 육성을 듣는 영적 체험을 한 후 더욱 문학에서 멀어졌다. 인터뷰 도중 작가는 영적 체험을 한 1981년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3년이라는 숫자 사이에 물결 표시를 한 후 그 밑에 '구약·신약'이라고 쓰고 옆에 동그라미를, '소설' 옆에는 세모를 그려넣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세모 옆에 괄호를 열고 가위표도 넣는다. 1981년 이후 성경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느라 소설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예 문학에서 손을 뗀 것은 1980년이지만 그 전에도 절필 아닌 절필 시절을 꽤 강남왁싱이어갔다. 1966년에는 영화계에 입문해 꽤 성공을 거뒀고 1970년대에는 대학 친구 김지하의 구명 운동에 몰두했다.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서울의 달빛 0장'도 그가 문학적 재능을 허비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반강제로 쓰게 한 소설이었다. 이 때문에 50년이라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을 많지 않다. 그러나 그 많지 않은 작품들은 오래 지나도록 후배 문인들과 문학청년들,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작가가 대학 시절 첫사랑을 바탕으로 쓴 '무진기행'을 비롯한 책들이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도 매년 1천만 원가량의 인세가 꾸준히 들어온단다. 작가 내구제자신에게 가개통폰가장 의미있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자 곧장 "다 똑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의 작품 중 황순원은 '염소는 힘이 세다'를,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를 가장 좋아했다는데 작가는 하나를 꼽기가 어렵다고 했다. 1980년 이후 독자들이 꾸준히 궁금해하는 것은 그의 집필 재개 여부다. 그는 뇌졸중으로 잃어버린 말을 찾아가는 중이다. 요즘 집에서 혼자 글을 읽고 쓰고 하는데 명사나 동사의 어간 부분은 무리가 없지만 조사나 어미 부분에서 막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발병 초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는 가로축에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쓰고 오른쪽으로 완만히 상승하는 그래프를 그려보였다. 특히 2009년 무렵부터는 지인들과도 자주 만나고 혼자 여행도 다닌단다. 대학시절 일간지 4컷 만화를 그리기도 했던 그의 미술적 재능은 여전해서 2010년 무렵 기독교 영통파스타월간지 '창조문예'와 '샘터'에 문학 현장과 문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단편 '환상수첩'을 시나리오로 옮기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작년 12월에 시작해서 올해 5월쯤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친한 영화감독이 제작하기로 했다는데, 그게 누구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은 비밀이란다. 연재를 중단했던 '먼지의 방'과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썼던 '서울의 달빛 O장'의 제목을 적더니 그 옆에 '미래의 소설'이라고 썼다. 앞으로 이어서 쓰겠다는 뜻이다. 그 '미래'가 언제쯤이 될지는 잘 모른다. 오래 준비했던 스리랑카 선교를 떠날 생각이고 그를 위해 외국어 공부도 하려고 한단다. 요즘 무엇을 자주 읽느냐는 질문에도 옆에 놓인 일간지를 뒤적이더니 생활 영어와 생활 일본어 꼭지를 가리켰다. 작가는 "모세가 여든 살에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는데 나는 이제 일흔하나"라며 밝게 웃었다. 그의 빛나는 작품을 하루빨리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하는 잠실눈썹문신것은 독자의 바람일 뿐, 작가는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과거 한 산문에서 그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는 기념품" 삼아 썼던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어쩐지 운명을 운전자보험비교사이트만난 느낌이었고 그러기에 뿌리치고 싶으면서도 막막했던 나의 미래가 그 안개를 살짝 열고 비교적 뚜렷이 보이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에는 어떤 안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20대의 작가에게 소설이 그랬듯, 70대의 그에게 종교가 길을 제시해주고 그로 인해 작가가 안도감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김승옥 소설의 감동을 입은 독자들로서는 아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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