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 밀브룩 골프장에서 지난 여행에 대해 술회하는 최경주. [사진 뉴질랜드오픈 조직위]
완도 수산고 학생 최경주는 성공하려면 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한서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서울에 오면 챙겨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완도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운동선수라 전학하려면 이적동의서를 받아야 했는데 학교에서 최경주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최경주는 선생님을 찾아가 읍소해서 전학할 수 있었다.
최경주의 아버지는 장롱 깊숙이 넣어뒀던 소 판 돈을 내줬다. 그렇게 그의 여행은 시작됐다.
“63빌딩 10층 이상 볼려면 돈 내야”
서울 친구 장난에 “얼마믄 된다냐?”
그린피 싼 뉴질랜드 첫 전지훈련
혹독한 훈련으로 우승하고 큰물로
미국선 골프장 못 찾아 실격될 뻔
다음엔 다른 선수 따라갔다 낭패
서울에서 그는 촌아이이었다. 한 친구는 “63빌딩은 10층까지는 무료로 쳐다볼 수 있는데, 그 위부터는 돈을 내고 봐야 한다”고 겁을 줬다. 최경주는 그 말을 믿었다. 9층까지 보고 나서 더 높이 보고 싶어 친구에게 “아야, 10층부터 볼라믄 얼마나 내믄된다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프로골퍼가 된 후 최경주가 첫 겨울 전지훈련을 한 곳이 뉴질랜드다.
1994년 말, 그린피가 싸고 골프 환경이 좋다 해서 남반구까지 날아갔다. 최경주는 “골프장에 나무가 많았다.
이런 곳에서 잘 치면 대회에 나가서도 잘 할 거라 생각하고 혹독하게 훈련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1995년 첫 우승을 했고 점점 더 큰 세상으로 갔다. 일본을 거쳐, 2000년 미국 PGA 투어로 진출했다.
여행의 가장 큰 덕목은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최경주도 고생이 많았다.
2000년 미국 투어에 처음 갔을 때다. 당시엔 내비게이션도, 구글 맵도 없었다. 최경주는 영어를 못했고, 매니저 같은 사람도 없었다
PGA 투어를 여는 미국 명문 프라이빗 골프장들은 외부인을 꺼려 입구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는다.
밀워키 주의 한 골프장을 찾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최경주는 경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실격을 면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했다. 꾀를 냈다. 다른 선수를 쫓아가면 되겠다 싶었다.
새벽 6시에 나와 호텔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일찌감치 나온 한 선수를 미행했다. 그 선수는 엉뚱한 고속도로로 20분을
가더니 쇼핑몰에 차를 댔다. 20분 후 분유와 기저귀 같은 것을 사 왔다. 최경주는 그를 따라 호텔에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경찰에 전화해 안내를 부탁했다.
최경주는 “미국에서 그렇게 고생할 때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PGA 투어 8승을 할지 상상도 못 했다”고 웃었다.
최경주는 PGA 투어 상금만 3200만 달러(약 343억원)를 벌었다.